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 9성 (문단 편집) === 학설에 따른 위치 비정 논쟁 === || [[파일:윤관척경.png|width=100%]] || || 선춘령(先春領)에 ‘고려지경(高麗之境)’이라고 새겨진 비를 세우는 장면을 담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『북관유적도첩(北關遺蹟圖帖)』 ||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은 공험진을 찾는다면 9성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[[현실은 시궁창]]. 만약 이 때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선춘령에 세운 비를 찾는다면 그야말로 세기의 발견. [[조선]]의 [[세종(조선)|세종]] 또한 선춘령의 위치를 파악해보려 신하들을 닦달했으나, 끝내 찾지 못했고 [[4군 6진]]의 개척 명분을 "공험진이 두만강 위 700리이니 두만강 까지 우리 땅이다."로 정하게 된다. >함길도 도절제사 [[김종서(조선)|김종서]]에게 전지하기를, >"동북 지방은 공험령으로 경계를 삼았다는 말이 전하여 온지 오래이다. 그러나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. 본국의 땅을 상고하여 보면 본진이 [[장백산]][* [[백두산]]을 말한다.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장백산은 중국에서 백두산의 소유권을 주장할때 쓰는 말이라는 것인데, 실제론 조선 시대까지 백두산과 장백산을 번갈아 가며 썼다.] 북쪽 기슭에 있다고 하는데 역시 사실인지 모르겠다. 『고려사』에 '윤관이 공험령에 비석을 세워 경계를 삼았다'하였다. 지금 듣건데 선춘점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 하는데, 본진이 선춘점의 어느 쪽에 있는가, 그 비문을 사람을 시켜 찾아볼 수 있겠는가. 그 비가 지금은 어떠한지, 만약 길이 막히어 쉽사리 사람을 시킬 수 없다면 폐단 없이 탐지할 방법을 경이 익히 생각하여 아뢰라. 또 듣건데 강 밖에 옛 성이 많이 있다는데 그 옛날에 비갈(碑碣)[* 돌로 만든 비석이라는 뜻이다.]이 있지 않을까. 만일 비문이 있다면 또한 사람을 시켜 등서(謄書)[* 글을 베껴오는 일.]할 수 있는지 아울러 아뢰라. 또 윤관이 여진을 쫓고 [[동북 9성|아홉 개의 성]]을 설치하였는데, 그 성이 지금 어느 성이며, 어느 쪽에 있는가. 거리는 얼마나 되는가. 듣고 본 것을 아울러 써서 아뢰라." >하였다. >---- >'''『조선왕조실록』 세종 실록 세종 21년 8월 6일''' 아래에 3가지 혹은 4가지 학설이 있으나 '''고고학으로 실증된 학설은 아무 것도 없다.''' 문헌상으로는 두만강 이북 700리설이 유일하나 이마저도 각 학자의 견해에 따라 반박과 논쟁들이 있는 상황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